밤에 벌어지는 일들
『Night for Day 박진아』, 헤적프레스, 2020
월광욕
세 명의 고정 멤버에 한두 명을 더하든지 아니면 그냥 셋이서 만났다. 전시 오프닝이나 파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뮤지션의 공연 등에서 만나 즉흥적으로 밤 나들이의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그렇게 향한 곳은 대개 한강 변이나 문 닫은 유적지 주변, 공원 등이었다. 인적이 드문 시간의 이런 장소는 도시 안에 있으면서도 도시와 분리된 섬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준다. <문탠 (Moontan)> 연작에 담았던 장소는 한밤의 공원이었다. 누군가가 달빛을 좀 쬐러 가자고 제안했던 것 같다. 어디서 구한 종이 상자나 비닐을 깔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공원 한 쪽에 앉아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서성이면서 달을 바라보았다. 흥겹게 노는 것은 아니었다. 대략 30세가 넘었으나 여전히 방황 중인 우리가 공유했던 것은 밤이 주는 흥분과 또 침착함이었다. 어쩌면 미묘한 연애 감정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친밀감은 나름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이 밤 나들이가 몇 달간 어떤 의식을 행하듯 지속되다가 어느 누군가가 더이상 원하지 않을 때 선선히 끝날 것이라고, 모두가 마음속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1
<문탠>을 시작으로 나는 밤중의 활동을 소재로 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이전 몇 년간 진행했던 <로모그래피(Lomography)> 연작은 빛의 양이 많은 낮의 야외를 배경으로 한 장면이 대부분이었다. 스케치로 사용했던 사진을 찍은 로모 카메라 자체가 기술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어두운 밤을 그리고 싶어졌고, 이전처럼 사진적 특성을 노골적으로 회화에 반영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문탠> 연작을 그리면서 참고했던 사진들은 카메라에 달린 플래시 라이트를 터트려 찍은 사진이다. 따라서 실제로 내가 공원에서 경험한 시각적 기억과는 크게 다르다. <로모그래피> 연작 이후의, 연속장면이 아닌 한 장면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는 플래시를 터트려 찍은 사진의 몇몇 전형적인 특성을 다루어 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무대의 배경처럼 평면화된 검은 배경 위에 납작하고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물들을 배우를 배치하듯 그려 넣는 방법을 연습하면서 이후 그림의 방향을 잡았다고 할까.
2008년의 개인전 ≪Eat, Sleep, Have Visions≫ 후에는 관심사가 미술 공간 등 특정한 실내공간을 그리는 것으로 옮겨가면서 당분간 밤을 소재로 작업을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2009년 파리에서 일련의 인상 깊은 수다의 밤을 보내고 난 뒤, 밤은 협업의 형태로 되돌아왔다. 밤 동안 이루어진 일들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일지라도 마치 중요한 의미를 가진 특별한 순간인 것처럼 기억되곤 한다. 때때로 이때 각인된 공감각적 경험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2012)
파리의 밤과 서울의 밤
2009년 여름, 두 달간 잠시 파리의 한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신작을 위한 스케치와 전시 준비를, 또 무엇보다도 여기저기 도시 구경을 많이 다닐 생각이었다. 그러나 두 달째에 접어들면서 볼 것 많은 파리는 뒤로한 채 나는 작업실 겸 숙소가 있는 건물 주변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레지던시 환경에서 흔히 그렇듯 자주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소모임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전시장이나 누군가의 오픈스튜디오 등에서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 몇 명의 사람들은 각기 다른 국적과 약간은 다른 전공 혹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며칠 간격으로 돌아가면서 서로의 작업실을 방문하기도 했고, 그렇게 시작된 대화의 장은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나로서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열심히 피드백을 했던 기억이 실로 오랜만이었고, 예술에 관한 다소 촌스러운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에 매혹될 뿐이었다. 워낙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레지던시라는 것이 저마다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 예정되어 있던 모임이기에, 다소 서글픈 마음으로 서로를 가식 없이 존중하게 하는 데 한몫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술도 한두 병씩 비워졌지만 술보다는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 데 더 취했던 것 같고 새벽이 밝아와 지칠 때가 되면 센 강 가로 잠시 산책을 갔다가 막 문을 연 빵집에 들러 크루아상과 커피를 사서 강둑이나 큰 건물 입구의 계단에 앉아 먹었다.
밤 모임원 중 한 명이었던 작곡가는 내게 협업을 제안했다. 그는 당시 ‘무겁지 않은 밤’과 ‘투명한 검정’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문탠>을 비롯해 밤을 소재로 한 일련의 내 그림에서 자신과의 어떤 접점을 발견했던 것 같다. 한번은 밤 모임 중 즉흥적으로 놀이하듯 한 명씩 돌아가면서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그 붓질 소리를 녹음해 보았다. 사용한 색이나 그린 형태, 붓의 움직임이 저마다 다른 만큼 녹음된 소리 또한 그 리듬이나 소리의 성격이 크게 달랐다. 그날 일찍 자러 가서 이 실험에 참여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다음 날 그 소리들을 듣고 누구의 그림 그리는 소리인지를 알아맞힐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소리로 해석해 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어느 날 밤 내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이 작곡가는 캔버스 뒷면에 소형 마이크를 부착해 붓이 움직이는 소리를 녹음하였고, 이를 재료로 전자음향을 사용한 작품을 하나 만들었다. 이후 회화 작품을 보면서 음악을 듣게 하는 단순한 형태의 협업이 이어졌다.
협업자가 서울에 잠시 머물며 작업할 기회가 생기면서 밤중에 한강 다리 위나 도로변, 식당, 골목 등에서 녹음한 노이즈가 재료로 추가되었다. 이
(2012)
새밤 복 많이 받으세요
2019년은 뉘른베르크에서 두 번째로 새해를 맞아보는 해였다. 12월 31일이 다가오면 그렇듯 낮부터 간간히 폭죽 터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정이 가까워지니 거리 곳곳에 연기가 피어 오르고 폭죽소리가 잦아졌다. 이전 해에는 집에서 창가에 붙어 누군가 골목에서 터트리는 폭죽을 구경했는데, 올해는 근처 공원에 나가 새해 맞이를 해보기로 했다.
집 근처 공원은 나지막한 언덕이었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각자의 준비물과 맥주병 등을 들고 삼삼오오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겁이 나서 밤중에는 걸어가보지 않았던 한 겨울 숲길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돌아다니는 기분은 꽤 상쾌했다. 이미 여기저기서 색색의 불꽃이 터졌고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멀리 시내에서 쏘아 올린 커다란 불꽃부터 바로 앞, 바로 옆에서 동시에 터트리는 폭죽까지 펑펑 소리가 요란했다. 자정이 되자 자욱한 연기가 사람들의 모습을 묻었다. 밝은 불빛이 어딘가에서 터지면 서성이는 남녀의 모습이 얼핏 보이기도 하고 흥분해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불꽃놀이 구경을 하러 나선 것이지만 연기 속에 뿌옇게 빛나는 진분홍색, 초록색, 오렌지색 섬광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 전야제의 난리법석이 숲에 사는 작은 동물들에게는 재앙일 것이다. 매 연말마다 폭죽 소리에 개들이 놀라기 때문에 폭죽 터트리는 것을 금지하자는 의견도 꽤 있다고 들었다.
곳곳에 생겨나는 섬광과 폭발소리, 매캐한 연기 사이에 서성이고 있다 보니 어딘가에서 많이 본 전쟁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내 감각은 굉음과 숨쉬기 힘든 연기 때문에 잔뜩 곤두서 있었다. 이 오락은 안전하게 즐기는 가짜 난리인가 싶었다. 꽤나 위협적으로 생긴 폭죽을 터트리고 있는 사람도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폭탄을 발사하는 기분을 한껏 즐기고 있는 듯 했다. 폭죽놀이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빛을 감상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빛을 직접 만들면서 유사 파괴행위를 즐기는 즐거움도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읽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중 인간은 불을 길들임으로써 치명적인 무기를 갖게 되고 무한한 잠재력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구절이 기억났고, 이 새해 맞이 이벤트는 무한한 힘인 불꽃을 갖가지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의식일까 생각했다.
2019년이 삼십 분쯤 지나 집으로 돌아오며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보았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불 켜진 마을이 장관이었고, 겨울 숲을 배경으로 여기저기 공터 바닥에서 빙글빙글 솟구치는 폭죽을 감상하느라 대중없이 흩어져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뭇 아름다웠다. 어두움과 연기 때문에 사진은 희미하게 찍혔고,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웠지만 그렇기에 인물과 나무의 실루엣으로 이루어진 이 불분명한 이미지에서 나는 여러 상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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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